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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르히나 R1

Serene_513

[이상(理想)]






메르세데스님.

티아라를 쓰고 있는 여성이 고개를 돌려서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서 리르히나의 얼굴에도 밝은 미소가 번져나갔다. 마치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메르세데스의 치장에 리르히나는 조금 더 메르세데스와 가까운 곁으로 다가갔다. 메르세데스는 티아라를 왕위를 계승하던 날과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이 아니면 쓰지 않았다. 혹여나 자신이 난리를 치다가 떨어뜨리면 어찌 하냐고 유쾌하게 말하던 것이 황당하게도 그 이유였다.

하지만 리르히나의 머릿속에는 그 날의 기억이 영상으로 머릿속에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높은 자리에서 티아라를 받아 머리에 쓰는 메르세데스의 모습이. 쭉 자신과 함께 커온 친구이자 가늘게 이어져있던 핏줄이었고 가끔은 라이벌도 되었고, 그리고… 영원히 섬길 것을 맹세했던 주군이었다. 그렇기에 그 날의 메르세데스의 모습은 무척이나 빛났고 리르히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쁨으로 남아있었다. 메르세데스가 왕이 된 날 리르히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존대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같은 자리에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말을 놓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예전부터 쭉 결심했던 일이긴 했다. 비록 유일하게, 그녀에게만 친근함의 의미로 반말을 쓰고 있지만 왕이 되면 그 때는 말을 높이자고. 메르세데스는 갑작스러운 존대에 섭섭하다는 뜻을 표했지만 리르히나가 굽히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깊은 관여는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여서 친밀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리르히나는 여전히 그녀를 존경하고 동경했다.



“웬일로 티아라를 쓰셨나요?”

“아아- 보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 메르세데스는 티아라를 벗어서 옆에 있던 요람의 가까이로 다가갔고 이번에 리르히나는 따라가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 서있었다. 메르세데스는 손에 쥐고 있던 아름다운 빛깔의 티아라를 요람 안에 있는 작은 아이의 옆에 조심스럽게 놓더니 곤한 잠에 빠져있는 아기의 작디작은 손을 만지면서 속삭이듯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젠가 이 아이가 이 티아라를 받아주겠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눈을 뜬 아이는 하늘색의 눈동자로 자신의 어머니를 뚫어져라 응시했고 메르세데스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이 아이가 나의 첫 아이이자 마지막 아이겠지. 나는 딸을 낳을 수 없을 거야, 리르히나.”

“…….”

“남자가 왕위를 잇는다는 것에 모두가 반발하겠지만, 나는 눈을 감으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것 같아. 그와 나의 피를 이어받은 이 아이가 나의 티아라를 물려받는 모습을.”



리르히나는 고개를 돌려서 요람 안의 아기를 보았다. 하얀 피부에 에우렐의 맑은 하늘을 빼닮은 선명한 빛깔의 눈동자. 부드러운 금빛의 머리카락까지. 정말로 메르세데스를 빼다 박은 외모에 리르히나는 잠시 동안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저에게도 보여요. 최초의 남자 왕으로, 메르세데스님의 티아라를 물려받는 모습이.”



메르세데스는 여전히 아기의 작고 여린 손을 잡은 채로 시선만을 리르히나에게로 돌려서 웃어보였다. 예전과 같은 높은 소리의 웃음은 아니었지만 그 수줍음만큼은 여전하게 담겨있는 미소. 리르히나는 그녀를 보며, 꽃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래, 너에게도 보이는구나. 기분 좋은 걸.”

“…네?”

“너와 내가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거니까.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고, 같은 이상을 좇고 있다는 거지?”



같은 꿈, 같은 목표, 같은 이상.

그렇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쭉. 단 한 번도 그녀와 다른 꿈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것을 함께 바라보았고 그녀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해왔다. 그 세월에는 일말의 거짓도 없었다.

리르히나는 요람의 가까이, 메르세데스의 옆으로 갔다. 아기는 울음소리도 내지 않고 그저 고르게 숨을 뱉으면서 메르세데스와 리르히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듯이. 메르세데스가 아기의 손을 놓자 이번에는 리르히나가 아기의 발에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댔고, 요람 가까이로 고개를 숙이면서 그 작고 부드러운 발등에 입을 맞추었다.

발등에 하는 키스의 의미는 예속. 리르히나도, 메르세데스도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리르히나는 직접 행동으로 보인 것이다. 자신이 이 작은 생명을, 메르세데스의 피를 이어 받은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메르세데스의 의견에 정말로 동의하고 있는지. 방금 그녀는 이곳에서,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기에게 영원의 충성을 맹세했다.



“다른 이들이 모두… 남자가 왕위를 잇는 것을 반대한다고 하여도 저만큼은 폐하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반드시 왕으로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고마워, 리르히나.”

“감사의 말을 들을 이유는 없지요. 저에게도 영광이에요. 최초의 남자 왕으로써, 성군이 될 차기 왕의 곁을 보좌할 수 있는 것은 말이에요.”



메르세데스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로 기뻐서, 행복이 가득 차올라서 흘리는 웃음 소리였다. 그렇네, 나도 영광인걸. 최초의 남자 왕으로 성군이 될 아들을 둬서 말이야.

아기는 작게 옹알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팔을 뻗어서 티아라를 잡았다. 마치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 약한 손으로 힘껏, 뺏기지 않으려는 듯 꽉 움켜쥐었다. 자신을 가득 담은 그 하늘색의 눈동자를 보면서 리르히나는 오색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을 내는 것이 티아라인지 아니면 옆에 있는, 방금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아이인지 순간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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